(정보글) 일본 사회인야구는 왜 한국에서 오해를 받게 되었는가? 그 기원을 araboza
때는 2006년 12월 2일
도하 아시안게임 예선격 경기인 일본전에서 오승환이 끝내기 쓰리런을 맞으면서 참사가 발생한 데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터넷상에 일본대표팀 대부분이 사회인 야구선수이며 오승환에게 홈런을 친 '초노 히사요시'가 오뎅 장수라는 소문이 합쳐져서 퍼졌다
당시 일본 대표팀은 사회인야구 17명, 대학생 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회인 선수들은 토요타자동차, 닛산자동차, 세이노운수, 미쓰비시중공업 등에 소속된 한국으로 치면 실업야구팀 소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사회인야구가 어떤 구조였는지 몰랐던 한국 네티즌들이 '사야에게도 지는 대표팀놈들' 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죽도록 욕했다...
일본의 사회인야구는 한국의 프로야구 창단 전까지 실존했던 한일은행, 상업은행과 같은 실업팀 격의 팀으로 주로 중공업이나 철도 계열에서 이런 팀을 운영한다
대체로 일본 사회인야구에 대한 평은 NPB 2군 혹은 3군~상위 티어들은 NPB 1.5군 수준도 있다고 한다
+김성근, 허구연이 대표적인 한국 실업야구 출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전에는 회사근무를 하고 오후에는 훈련을 하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페이는 낮지만 기본적인 고용이 보장되고 야구를 그만두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일부 기업도 있다고 한다
드래프트를 재수하기 위해 사회인에 입단했다가 거쳐가는 선수도 있고 프로에 딱히 꿈은 없지만 야구는 계속 하는 선수들도 주로 입단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형태의 사야는 '풀뿌리 야구(쿠사야큐)'라는 이름으로 따로 존재한다
당시 초노 히사요시는 니혼대학 소속의 대학생이었고 오뎅장수도 아니었으며
요미우리에 가고 싶어서 프로 드래프트를 재수삼수하던 근성의 요미우리무새 교진무새였다...
대학때 날아다녀서 니혼햄에서 지명받았으나 -> 요미우리 갈거야 거절
혼다 사회인야구팀에 입단하고 사야를 씹어먹으며 지바롯데에서 제의받음 -> 안돼 나는 교진만 갈거임 교진줘.
그렇게 거인밖에 몰랐던 이놈은 결국 2009년에 요미우리에 입단했고 데뷔시즌엔 센트럴리그 신인왕도 받았다고 한다.
즉 이미 프로지명 경험이 있는 유망주 대학생이었을 뿐 전부 헛소문이었다는 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