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 채식주의자 읽은 후기
사실 한 2주 전에 읽고 후기를 썼는데 너무 길어져서 따로 저장만 해두고 걍 안올렸었거든 ( •́ө•̀;ก)💦 근데 긴 글이 동닷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길래 한번 올려봐! 별로 그렇게 대단한 후기를 쓴 것도 아닌데 걍 주저리 주저리 길기만 해 ㅋㅋ 아 그리고 스포 짱 많으니까 아직 안 읽은 닮들은 패스해줘!!
정말 한동안 소설은 거의 안 읽고 에세이집 위주로 읽다가(그마저도 그렇게 많이 읽진 않음ㅋㅋ) 이번에 노벨상 수상 소식 듣고 이북으로 구매했어 (◔ ө ◔ )੭ 실물책도 나중에 사려구.
원래 소년이 온다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채식주의자에 대한 후기(기괴하다, 충격적이다)를 보다 보니 이 책에 좀 더 관심이 가서 이것부터 먼저 읽었어. 조금만 읽어야지 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어버렸지뭐야 흡입력 미쳤어.
읽다보니까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기괴하다고 하는지 알겠더라구. 그렇다고 고어 영화 보는 것처럼 기분 나쁘고 그런 정도는 아니고, 작가님의 담담한 문체 때문인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묘사들도 그렇구나, 하면서 받아들이면서 읽을 수 있었어. 작가의 말에 이 책은 따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더라. 어쩌면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으로 적힌 각 챕터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불완전한 관점을 모아서 영혜의 형체를 희미하게나마 그려내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어. 물론 우리는 영혜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의문들이 남지만.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진정한 소통 없이 모두 단절 되어있는데, 영혜의 남편과 형부의 단절은 그들이 철저하게 자기자신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데서 비롯된 것인 반면 영혜와 그 언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단절을 택한 것 같았어. 남편과 형부의 내면묘사를 보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계획을 세우지만(예를 들어 가족들에게 영혜의 상태를 알리고 가족모임 때 영혜에게 잔소리하도록 암묵적으로 계획하는 것, 영혜와 J의 포르노를 찍겠다고 혼자 결정하는 것) 그 계획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찰은 거의 없고, 심지어 그 계획을 소통하고 이해시키기보다는 그저 통보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렇게 계속해서 일어나는 마찰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는 하지만, 자기자신에게 몰입되어 살아온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연재해라고 느껴졌던 것 같아. 인재(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에게서 기인한 인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마저 생각을 못하는 거지.
영혜와 인혜는 참 많이 닮았어. 둘 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에서 비롯된 무력함을 경험했고,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다른 방법을 택했던 것 같아. 영혜의 경우는 격리(심리학 용어로는 해리), 인혜의 경우는 순응. 둘이 서로 다른 방식을 택한 데에는 성격이라든지 다른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회적 기술의 유무도 작용했던 것 같아. 책의 곳곳에서 인혜가 영혜보다 인상도 좋고 성격도 좋고 사람들과 더 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니까. 어떻게서든 타인과 접촉을 하고 어울릴 수 있었던 인혜는 자신의 욕구를 죽이고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런 사회적 기술도 부족하고(그리고 딱히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영혜는 어릴 때부터 자신과 현실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견뎌왔던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격리하며 살아왔던 영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닌 범우주적 생명과 연결되었어. 그렇게 해서 모든 살아있는 동물, 더 나아가 식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다 보니 당연히 육식도 할 수 없었고. 우리도 누가 갑자기 식인을 하라고 하면 거부감이 느껴질 거 아냐? 영혜에게는 그게 비슷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 영혜는 결국 누구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고 누구에게서도 상처입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살생하지 않아도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꽃처럼 연약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껍질을 두른 나무. 두 팔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다리를 힘껏 들어올린 영혜의 상상 속 나무의 모습은 활력이 넘쳐보였어. 죽어가는 영혜의 인간 모습과는 달리. 결국 영혜가 그토록 원하던 탈피를 이루었는지 소설이 끝나도록 알 수는 없지만.
근데 사실 영혜보다 더 내가 마음이 갔던 인물은 인혜였어. 타인의 욕구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의 끝없는 욕구에 완벽히 부합할 수는 없었고 끝내 아들과의 관계를 제외한 모든 관계와 끊어져버렸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거야, 남편이든 부모든 타인의 요구를 완벽히 다 들어주는 건. 인혜가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을까 걱정하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소식에 좌절한 건, 어쩌면 인혜에게도 영혜와 같이 고단한 삶을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인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놓지 않아. 어쩌면 그에게는 타인을 돌보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살리는 일이었던 거지. 어린 아들을 혼자 둘 수가 없어서, 아픈 동생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인혜는 다시금 일어나 하루를 살아가. 비록 끝이 점점 닳아 마모되어가는 분필 같을 지라도. 인혜는 세 명의 화자 중 유일하게 영혜의 호불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영혜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했다 가져다주는 다정함을 가지고 있어. 어린 아들의 필사적인 몸짓 뒤의 의미를 알고, 자신과 닮은 그 애정의 형태를 가여워할 줄 알아. 그 타인을 향한 연민이 자신에게도 향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거부한 영혜와 달리 인간의 삶을 계속 살아가기로 선택한 인혜에게는 분명 그럴 수 있는 희망이 있으리라 믿어. 영혜가 인간의 삶 밖에서 희망을 찾았다면, 인혜는 인간의 삶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어떤 형태로든 두 자매가 자신들이 원하는 평안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엔딩이지 않을까. 소설 안 등장인물일 뿐이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영혜와 인혜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고픈 마음이 들었어.
다음엔 소년이 온다 읽어보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