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보다 빛나는 조연’…SSG 오태곤이 빛을 내는 방법[스경x인터뷰]
프로야구 1군 엔트리는 기본 28명으로 구성된다. 주전 선수로만 144경기를 치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주전급이 아니더라도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면 누구든 한 번쯤은 출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오태곤(34·SSG)은 이 점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다. 2010년 롯데에 입단한 오태곤은 KT를 거쳐 2020년 SK(현 SSG)로 트레이드돼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15년 차 베테랑인 오태곤은 주전보단 후보에 가까운 선수 생활을 해왔다. 매 시즌 목표가 일단 버티기였다.
오태곤은 내외야 모두 수비할 수 있고, 특히 주루에 강점이 있다.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릴 수 있는 장타력도 갖췄다. 쓰임새가 다양한 오태곤은 SSG에서 ‘슈퍼 백업’ 역할을 쏠쏠히 했다. 2022시즌 종료 후엔 SSG와 4년 총액 18억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도 했다. 최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오태곤은 “KBO리그는 선수층이 얇은데, 경기 수가 많아서 주전들이 144경기를 뛰긴 힘들다”며 “기회는 꼭 온다는 생각으로 15년 동안 버텨온 것 같다”고 말했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르다. 오태곤은 올해 4월 20경기에 출장해 15타석을 소화했다. 대부분 대수비나 대주자로 활용됐다. 오태곤은 “더그아웃에서 박수만 치다가 대주자로 들어간 뒤 수비 좀 하면 경기가 끝났다. 야구 선수는 시합할 때 가장 행복한데 그러지 못해 굉장히 힘들었다”며 “야구장에서 티를 내면 팀에도, 나에게도 마이너스라 퇴근 후 집에서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SSG는 올해부터 점진적인 세대교체를 시작했다. 30대 중반인 오태곤의 기회도 더 줄었다. 구단이 정한 방향성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울컥하는 마음까지 다스리는 게 쉽진 않았다. 오태곤은 이번에도 버텼다. 팀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더 파이팅을 크게 외쳤다. 같은 포지션 후배가 잘하면 더 크게 박수 쳐줬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게 행동거지도 조심했다. 오태곤은 “평소 후배들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편인데, 같은 포지션(1루)인 (고)명준이나 (전)의산이에겐 쓴소리를 하지 않았다”며 “‘괜히 시합 못 뛰니까 이런 소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태곤이 할 수 있는 건 ‘준비’밖에 없었다. 대타 요원은 드문드문 타석에 들어가다 보니 일정한 타격감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주 오지 않는 기회를 잡는 것도 선수의 역량이다. 오태곤은 “언젠가 기회가 오는 건 알고 있는데, 그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많은 편”이라며 “경기 전에도 배팅 케이지에 들어가 계속 공을 쳤다. 시합 중에도 5회가 지나면 기계를 틀어놓고 계속 치는 연습을 했다”고 설명했다.
백업 경험이 많은 오태곤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후배들한테도 더그아웃에서 ‘파이팅’ 안 해도 되니까 배팅 케이지 들어가서 치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며 “가만히 앉아 있다가 대타 나가서 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백업 선수들은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이야기했다.
오태곤은 올해 117경기 타율 0.275, 9홈런, 36타점, 27도루, OPS 0.804의 성적을 거뒀다. 막판 순위 싸움이 한창이던 9월에만 타율 0.356, 4홈런을 기록했다. 지난 9월25일 창원 NC전에선 올시즌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좌완 카일 하트를 상대로 결승 스리런포를 터트리며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오태곤은 올해 SSG에서 최지훈(32개)에 이어 도루 2위를 기록했다. 도루 성공률도 87.1%로 준수하다. 도루는 1군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태곤이 갈고닦은 능력 중 하나다. 그는 “보이는 것보다 발이 빠르다. 우리 팀 주전 중에 뛰는 선수가 많이 없어서 1순위 대주자가 되려고 투수들의 습관이나 심리들을 많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오태곤은 다음 시즌에도 살아남기 위해 버틸 생각이다. 선수라면 누구나 주전을 꿈꾸지만, 누군가는 뒤를 받쳐야 한다. 오태곤은 “백업이란 단어와 이젠 한 몸이 된 것 같다. 주전으로 뛰지 못해 슬플 때도 있지만, ‘슈퍼 백업’이라고 불러줄 때 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며 “오태곤만큼 1군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야구엔 주연만 있는 게 아니라 조연도 있다”고 활짝 웃었다.
고니 화이팅 ㅠ0ㅠ